2020년 청소년기후행동을 비롯해 기후 위기를 우려하는 여러 시민단체가 함께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이나 흐른 올해 들어서야 헌재는 공개변론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5월 21일 그 마지막 공개변론이 있었습니다. 기후소송이 끝을 향하고 있다는 겁니다. 과연 헌재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요?
“정부는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을까.” 이 난해한 질문을 풀기 위해 시작한 기후소송의 마지막 공개변론이 지난 5월 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습니다. 기후운동단체 청소년기후행동와 아기기후소송을 비롯한 기후소송 청구인들의 요지를 쉽게 풀면 이렇습니다.
정부는 2020년 감축하려 했던 탄소 목표를 없앴고 2030년까지의 목표치만 설정했기 때문에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탄소 감축량의 부담을 더 키웠다. 탄소 감축량을 미래로 미루면 미룰수록, 미래 세대는 위험에 시달린다.
기후소송 청구인들은 가장 먼저 정부가 목표치를 못 지켰다는 걸 지적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2009년 세웠던 2020년 탄소 목표 배출량은 5억4300만톤(t)이었지만 실제 2020년에 배출한 온실가스는 6억5600만t에 달했습니다. 여기에 2020년 목표 배출량을 지키지 않고 2020년이 되기 전인 2019년에 2030년 목표치를 설정해버린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부는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합니다. 정부가 내세운 탄소 배출량 기준점은 2018년(7억2760t)입니다. 2020년 목표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장 배출량이 많았던 2018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배출량을 4억3660t으로 39.99%를 감축하겠다는 게 핵심이라고 주장합니다. 5억1200t을 배출하고 탄소포집기술 등을 이용해 탄소 7540t은 다시 흡수하겠다는 겁니다. 탄소포집기술이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양측은 2030년과 그 이후의 목표를 바라보는 관점도 다릅니다. 청구인들은 2030년 이후 탄소 예산(지구 평균 기온 1.5도 상승폭을 유지하기 위한 허용한 탄소배출량)이 이미 ‘제로(0)’ 상태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정부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2030년 이후 5년마다 목표치를 수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최종 목표는 2050년 배출량 ‘제로(0)’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030년, 2035년, 2040년 등 중간 과정에선 얼마든지 ‘오차’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정부 측 대리인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선진국은 지금까지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기 위해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을 쏟아왔다.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선진국의 대응을 그대로 따라가긴 어렵다. 오히려 우리나라가 세웠던 2018년 대비 2030년 40% 감축량은 매우 의욕적인 수치라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와 청구인의 논쟁 지점은 또 있습니다. 기후위기에서 발생하는 피해입니다. 기후소송 청구인들은 정부의 부실한 대응책 탓에 기후위기가 심화한다면 결과적으로 미래세대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날 청구인 신분으로 헌재에 출석한 한재아(13) 학생의 말을 들어볼까요?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지만 어린이에게는 그런 기회가 없습니다. 2031년, 제가 성인이 됐을 때 지구 온도는 얼마나 올라갈까요? 기후변화 같은 공통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공평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와 ‘산업’ 피해도 되레 더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습니다. 탄소 배출량 목표치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소극적인 정책을 펼친다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대기업이 우리나라 기업의 상품을 외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일례로, MS는 2025년 회사가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 전기로 충당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이 아니면 전기를 사들이지도 않겠다는 겁니다. 지금부터 재생에너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든 다른 어떤 나라든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양측의 마지막 논쟁 지점은 목표 달성 여부입니다. 청구인 측 변호인단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지금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세계 각국이 달성할 때 지구 온도는 2.9도 오르고, 이 사실은 정부 측 참고인도 동의한 내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세운 목표대로라면 파리협정에서 규정한 ‘1.5도 상승’을 막지 못한다는 겁니다. 반면, 정부는 목표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NDC를 달성하더라도 세계 평균 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유지할 수 있을지 증명하기 어렵다.”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을까요? 일단 정부의 주장엔 ‘빈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가 만든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에는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했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법에 맞춰 목표를 설정했다는 건 ‘1.5도 이내 상승’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절차적 문제도 있습니다. 탄소 감축량이 어느 정도고, 이행 현실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정부가 미래세대의 말을 얼마나 경청했는지는 의문입니다. 2021년 5월 탄소중립위원회가 생기고 올해까지 35차례의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정부는 그중엔 청소년의 자리도 마련했다고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김서경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청구인 발언에서 “탄소중립위원회가 차려놓은 ‘논의 테이블’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청소년은 그저 명분으로 활용당했을 뿐”이라며 “누군가가 내뱉은 ‘학교에 결석한 이야기나 하라’는 말을 듣고 사퇴를 선택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부가 미래 세대의 말을 진심으로 듣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진=뉴시스, 자료 | 환경부, 참고 | 2030년은 목표치 순 배출량은 탄소포집기술 적용시]
우리나라 헌법재판소가 이번 청구를 인용하면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 판결로 남습니다. 청구인들은 우리나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시아 국가들의 기후위기 대응에도 막대한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때문인지 청소년기후행동은 더 적극적으로 기후소송에 임하고 있습니다. 헌재 판결 전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기 위해 거리로 나가 국민참여의견서를 받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선 헌법재판소에 보내는 말을 ‘말풍선’ 형식으로 모으는 캠페인을 7월 23일까지 진행합니다. 다음날엔 이렇게 모은 말풍선과 의견을 ‘국민참여의견서’란 이름으로 헌재에 공식 제출합니다.
이번 ‘기후소송’은 아시아 최초란 기록을 배제하더라도 중요합니다. 기후위기로 변한 새로운 시대의 모습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김서경 활동가의 말을 더 들어볼까요. “매년 더 강도 높은 재해를 만들어낼 기후위기는 개인의 힘으로 이겨낼 수준을 넘었습니다. 국가적 기후위기 대응의 기준점이 되는 법이 우리 삶의 최저선을 결정할 겁니다.” 우리는 그 새로운 시대를 어떤 수준에서 맞이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