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압박에…기업대출로 눈돌리는 은행

시중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압박이 커지자 기업대출에 다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동안 주택담보대출 위주의 영업으로 기업대출 증가세가 잠시 주춤했지만 추석 이후로는 기업대출로의 자금 이동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기업대출 잔액은 822조 8716억 원으로 지난해 말(767조 3139억 원) 대비 55조 5577억 원 증가했다. 지난해 1~8월 증가분(43조 7625억 원)과 비교해 27%가량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올해 주담대 잔액이 지난달까지 38조 7694억 원 증가해 지난해 1~8월 증가분(1조 8582억 원)의 20배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더디다.

대출 재원은 한정된 상황인데 가계대출이 예상보다 크게 늘며 은행들이 최근 기업대출 속도 조절에 나선 것이다. 실제 기업대출은 올 상반기까지 증가 폭을 키우다 지난달 들어 주춤하는 모양새다. 5대 은행의 지난달 대기업대출 잔액은 163조 1513억 원으로 전월 대비 1조 783억 원 늘어나며 올해 가장 작은 증가 폭을 기록했다. 특히 4월 증가 폭이 6조 1376억 원에 달했던 것과 비교하면 증가 추이가 크게 꺾였다. 중소기업대출도 659조 7201억 원으로 전월보다 3조 5648억 원 늘어 1월(3111억 원 증가) 이후 7개월 내 최소 증가 폭을 기록했다.

금융권에서는 주담대 조이기 기조에 따라 추석 이후에는 기업대출 영업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추석 이후 다음 달부터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와 은행권 대출 제한 등 규제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가계대출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은행 입장에서는 각종 규제로 가계대출이 줄어들 경우 기업대출 확대로 수익성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무작정 대출을 확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가계대출 비중이 높다면 자연스럽게 기업대출 비중이 줄게 된다”며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힌 후에는 기업대출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라고 전했다. 우리은행은 충청권에 기업금융 특화점포인 ‘비즈프라임센터’를 개설해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신한은행은 기업금융 서비스 조직 ‘SOL 클러스터’를 본격 가동한다. 하나은행은 하나증권과 기업금융 부문의 협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다만 기업대출 건전성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대출의 경우 건당 취급 규모가 가계대출보다 큰 탓에 건전성이 악화할 경우 리스크 부담도 더 크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5대 은행의 기업 무수익여신 잔액은 2조 5807억 원으로 1년 전(2조 1893억 원)보다 17.9%(3914억 원)나 증가했다. 무수익여신은 말 그대로 수익이 없는 대출이다. 원금은 물론 이자 상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깡통 대출’을 말한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금리가 지속되고 경기 부진이 이어지는 탓에 자영업자는 물론 기업들의 부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기업대출 확대로 전략을 선회하는 은행들은 건전성 관리 방안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금리 인하기 전까지는 기업 여신 확대 속도에도 보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